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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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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산교회 작성일 18-03-30 18:16 조회 17 댓글 0
 

예수를 바라보자

성경본문: 히브리서 1139124

1. 겸손의 왕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여 종려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사역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오시고 드디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시고 들어가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한 눈에 보이는 감람산(올리브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11:1-6).

제자들은 나귀 새끼의 등에 겉옷을 올려놓았고,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요? 30대의 건장한 청년이 조그만 송아지만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럽습니다. 나귀는 폼 나게 탈수가 없습니다. 안장도 없고 등도 넓지 않고 터벅터벅 기우뚱 기우뚱 그렇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저 멀리 약 800m 거리의 감람산에서 성전을 향하여 기드론 골짜기를 나귀 타고 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요, 메시야가 그런 이상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겉옷과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호산나외치며 소리를 쳤습니다. “호산나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도와주소서.”하며 예수님을 찬송했습니다.

예수님은 메사야로 좀 더 멋지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수는 없었을까요? 예수님도 멋진 백마를 타고 기세 좋게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훨씬 더 멋있고, 기품 있게 보일 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 탄 모습의 정복자로 당당한 모습의 지배자로 위에서 누군가를 힘으로 지배하는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친구로 친근한 모습으로 어쩌면 우스운 모습으로 평화와 겸손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외모로 대우받고 추앙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겸손의 왕으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9:9).

예수님은 왜 하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셨을까요? 여러분도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기 보다는 친구가 되어주고 겸손히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2. 십자가의 예수

그런데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에 가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마시려고 예루살렘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당할 것을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고난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왕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님 밑에서 한 자리를 얻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말씀하시자 제자 중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그러시면 안됩니다. 왜 예수님이 고난을 받습니까? 주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야 합니다.”이렇게 말한 것입니다(16:22). 그러자 주님은 그것은 사탄의 생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23). 베드로의 생각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잔인 십자가의 고난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26:39).

예수님은 털을 깍는 어린 양처럼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53:7). 그렇게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침을 뱉었습니다. 누군가는 얼굴을 때렸습니다. 어떤 이는 조롱을 했습니다. 로마 병정은 예수님의 등을 채찍으로 40대를 쳤습니다. 그이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양손에는 큰 대못이 박혔고, 발에도 못이 박혔습니다. 옆구리에는 창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은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대꾸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27:40).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그 길을 피하려고 합니다. 힘든 일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길, 아무도 원치 않는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순종과 인내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옛날 믿음의 선배들은 경건의 삶을 살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주는 여러분이 결단하며 기도하는 한주가 되길 바랍니다.

3.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성경은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습니다(9:12).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 사함을 얻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10:9). 이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4:12).

그 이전까지는 이렇게 확실하게 구원을 약속받지 못했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지만 약속된 메시야와 구원의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11:39). 다 영원한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약속을 받기를 원했지만 받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장 확실한 약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새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넘어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은혜로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11:40).

영원한 안식의 하늘나라의 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문이 확실히 열리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문이 열린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받지 못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인내로서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나가야 합니다(12:1).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과 구원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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